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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마지막 앞에서 배운 것 (경계선, 자기설계, 긍정확언)

tax822 2026. 8. 20. 06:21

목차


     

     

     

    살다가 마지막 직전에야 비로소 삶이 보인다는 말, 그냥 흘려들은 적 있으셨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몸이 무너지고 나서야, "지금 이대로 살다가 정말 괜찮은가"라는 질문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들어왔습니다. 고명환 작가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섬뜩한 반성이 먼저 찾아왔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삶과 마지막의 경계선, 그 1초가 바꾼 것

    190km로 달리던 차 안에서 심장에 혈전(血栓)이 생긴다는 건 어떤 상황일까요. 혈전이란 혈관 안에서 피가 굳어 덩어리진 것을 말하는데, 크기가 작아도 심장에 자리 잡으면 즉사(卽死)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의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당시 담당 의료진이 나중에 "그 크기의 혈전이면 이미 사망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했다는 사실이 그냥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중환자실(重患者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고명환 작가에게 보였다는 장면, 그러니까 34년간 남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을 따라 끌려다니며 살아온 자신의 모습, 저는 그 대목을 읽으면서 솔직히 식은땀이 났습니다. 제가 몸이 심하게 아팠던 시기에도 "나으면 지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가, 회복하자마자 한 달도 안 돼서 예전 패턴으로 돌아간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이 돌아오면 위기감도 함께 빠져나가더군요.

    일반적으로 삶의 마지막에 가까운 경험을 하면 사람이 바뀐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 각성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흐릿해집니다. 신체가 온전해지는 속도만큼 위기의 기억도 희석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명환 작가가 그 경계선의 감각을 책과 강의로 반복해서 꺼내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질문을 남겨두는 것이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대형 교통사고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는 환자 비율은 전체 중증 외상 환자의 30% 이상에 달하며, 심리적 회복에 신체 회복보다 평균 2~3배 긴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몸이 낫는다고 마음도 낫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자기설계 없이 달리는 삶의 구조적 문제

    하루에 밤무대를 네다섯 군데 돌면서 안산에서 인천까지 15분 만에 달렸다는 이야기, 처음에는 그게 그냥 젊은 시절 무용담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맥락을 짚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자기설계(自己設計) 없이 외부의 스케줄과 타인의 기준에만 맞춰 움직인 삶의 단면이었던 겁니다. 자기설계란 내가 가고 싶은 시간에, 가고 싶은 방향으로, 나의 고유한 방식으로 삶의 항로를 직접 결정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고명환 작가가 교통사고 이후 방송 복귀 대신 중앙대 대학원 뮤지컬 극작과를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개그맨으로서의 커리어를 쌓는 대신,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글 쓰는 역량을 지적재산권(著作財産權), 즉 로열티와 저작권 수익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설계했습니다. 지적재산권이란 창작물로부터 발생하는 법적 권리를 의미하며, 쉽게 말해 내가 없어도 내 이름으로 돈이 들어오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 구조를 만드는 것이 어렵다기보다는 그 가능성 자체를 '내 이야기'로 연결하는 게 먼저 어려웠습니다. 작가의 세계, 강사의 세계, 콘텐츠 창작자의 세계가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것이 나와 연결된 현실의 경로라는 실감이 오지 않았거든요. 데미안의 표현을 빌리면 '창문'이 없었던 셈입니다.

    자기설계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실제로 검토해볼 만한 경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지금 하는 일에서 내가 진심으로 몰입하는 순간을 기록한다 — 그게 방향의 원점이 됩니다
    2. 내 역량 중 가만히 있어도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저작권, 강의, 콘텐츠)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3. 책을 읽되 답을 찾으려는 질문을 먼저 갖고 펼친다 — 아무 질문 없이 읽는 독서는 소비에 가깝습니다
    4. 타인에게 조언을 구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먼저 묻는 습관을 만든다

    긍정확언은 효과가 있는가, 직접 써봤습니다

    긍정확언(肯定確言, Positive Affirmation)이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를 이미 완성된 사실처럼 말하고 반복하는 자기암시 기법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처럼 예언적 완료형(豫言的 完了形)으로 표현하는 것이 핵심인데, 예언적 완료형이란 미래의 일을 문법적으로 이미 완료된 시제로 선언하는 방식입니다.

    일반적으로 긍정확언을 하면 갑자기 뭔가가 뚝 떨어지거나, 주변 환경이 마법처럼 바뀐다고 믿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 오해를 그대로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몇 달 해보니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더군요. 로또처럼 결과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 말을 뇌가 계속 들으면서 '맞추려는 열정'이 켜지는 방식이었습니다. 책이 더 읽히고 싶어지고, 관련된 방송이 눈에 들어오고, 내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스스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뇌과학(腦科學) 분야에서는 이를 자기 참조 효과(Self-Reference Effect)로 설명합니다. 자기 참조 효과란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뇌가 더 강하게 처리하고 오래 기억하는 현상인데, 이 원리로 인해 "나는 이미 ~다"라는 선언이 뇌의 처리 우선순위를 바꾼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 국립보건원(NIH) 관련 연구에서도 자기확인(Self-Affirmation) 행동이 문제 해결 능력과 행동 변화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발표된 바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외침이 진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입 밖에 내는 긍정확언은 뇌를 속이지 못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을 때 가장 효과가 느껴진 건 수치가 구체적일수록, 그리고 내가 실제로 믿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조금 더 큰 숫자를 말할 때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빠른 출발점이라는 것

    세뇌(洗腦)라는 표현이 다소 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맥락에서 세뇌란 특정 집단이나 사회가 반복적으로 주입한 가치관이 나 자신의 욕망과 목표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대기업, 공무원, 조기 은퇴 같은 목표가 진짜 내 욕망인지, 아니면 학습된 욕망인지 한 번이라도 의심해본 적 있으셨습니까?

    저도 30대 초반에 "그 나이까지 이걸 못 했다는 게 창피하지 않냐"는 말에 흔들려 억지로 방향을 틀었던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나름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남의 기준이 저를 움직이고 있었거든요. 그 경험이 고명환 작가의 "말 잘 듣는 일꾼으로 교육받았다"는 표현과 겹쳐져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출발점이라는 말, 뻔하게 들리지만 제 경험상 이게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늦었다는 생각 자체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금 당장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그 질문 하나가 생각보다 훨씬 먼 곳까지 배를 돌려놓습니다. 인생의 항로는 타이타닉급 배처럼 한 번에 꺾이지 않지만, 조금씩 방향이 바뀌면 결국 전혀 다른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워라밸(Work-Life Balance), 즉 일과 삶의 균형이란 개념도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이 힘들고 삶이 즐겁다는 이분법으로 접근하면, 일은 결국 피해야 할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일 자체가 유용함(有用함)을 나누는 행위가 될 때, 그러니까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줄 때, 그 경계가 흐려집니다. 제 경험상 가장 몰입했던 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이 일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긍정확언을 매일 해도 실제로 효과가 있나요, 아니면 자기위안에 불과한가요?

    A. 일반적으로 긍정확언이 단순 주문처럼 결과를 만든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렇게 작동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반복적인 선언이 관련 정보를 더 예민하게 포착하도록 뇌의 방향을 바꾸더군요. 국립보건원 연구에서도 자기확인 행동이 실제 행동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나와 있으니, 완전한 자기위안으로 치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진지하게, 구체적인 수치로 선언할 때 효과가 더 있었습니다.

    Q. 지금 직장을 다니면서도 자기설계를 할 수 있나요, 퇴사가 먼저인가요?

    A. 퇴사가 자기설계의 전제 조건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실제로는 순서가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있는 자리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질문을 먼저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방향이 잡히면 이동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퇴사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끌려다님일 수 있습니다.

    Q. 고명환 작가처럼 그러한 삶의 경계선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이런 각성을 할 수 없는 건가요?

    A. 그렇게 보는 시각도 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이 창문 역할을 한다는 표현처럼, 간접 경험을 통해서도 충분히 세계관이 흔들리는 순간은 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흔들림을 흘려보내지 않고 질문으로 붙잡는 습관입니다. 제 경험상 책 한 문장이 꽤 오래 살아남아 나중에 다른 상황에서 튀어나오더군요.

    Q. 워라밸을 추구하는 게 왜 문제가 될 수 있나요?

    A. 워라밸 개념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일을 무조건 소진해야 할 에너지로 보는 전제가 문제입니다. 일이 유용함을 나누는 행위가 될 때는 밸런스를 맞출 필요 자체가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일과 삶을 대립 관계로 설정하면 일은 버텨야 할 것이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 번아웃(Burnout)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번아웃이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를 뜻합니다.

    Q. 자기 안에서 솟아나오는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A. 학습된 욕망과 진짜 욕망을 구별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왜"를 최소 다섯 번 반복해서 묻는 것입니다. 대기업에 가고 싶다면 왜인지, 그 이유도 왜인지를 계속 파고들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외부의 언어가 끊기고 내 언어가 남습니다. 제가 직접 해봤을 때, 세 번째 질문쯤에서 대답이 막히는 것이 오히려 더 솔직한 출발점이 됐습니다.

    결국 삶의 마지막 단계라는 경계선 앞에서야 알아챈 것들을, 그 경계선에 가기 전에 먼저 챙길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이상적입니다. 저도 온전한 상태로 돌아온 뒤 예전으로 돌아가려 했던 본성을 봤기 때문에, 이 질문을 혼자 다짐으로만 붙들기는 어렵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책이든 강의든 이런 글이든, 반복해서 그 질문과 마주치는 환경을 만들어두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나서 딱 한 가지만 하신다면, 스스로에게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9PQ1whxIOq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