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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경제학 (호모 이코노미쿠스, 손실 회피, 넛지)

tax822 2026. 9. 21. 13:00

목차


    두꺼운 책을 펼치는 순간 느끼는 그 묵직한 부담감, 혹시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2021년부터 하루 10페이지씩 리처드 탈러의 행동 경제학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다 보니, 어느 순간 제 주변 사람들 행동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내리는 선택들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이 책은 아주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짚어냅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 우리는 정말 합리적인 존재일까요

    경제학 교과서는 오랫동안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개념을 전제로 삼았습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란 항상 이성적이고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가상의 인간형을 뜻합니다. 저도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 당연한 말 아닌가 싶었는데, 탈러의 사례를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탈러가 경제학과 교수로 임용 초기에 100점 만점 시험을 출제했더니 학생들의 평균 점수가 72점에 머물렀고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음 시험을 137점 만점으로 바꿨습니다. 내용도, 난이도도 그대로인데 평균이 90점대로 올라가자 학생들의 불만이 사라졌습니다. 점수라는 숫자의 상대적 위치에 감정이 반응한 것이지, 실제 실력을 정확히 판단한 게 아니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주류 경제학의 합리적 모형으로는 그 위기가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일어났죠. 탈러는 이처럼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는 원인을 경제학이 인간의 심리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그의 연구 기반이 된 것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에이모스 트버스키가 1974년 발표한 논문 '불확실성에 따른 판단: 휴리스틱과 편향'이었습니다. 휴리스틱(Heuristic)이란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직관이나 경험 법칙으로 빠르게 판단하는 사고 방식을 뜻합니다. 덕분에 판단이 빨라지지만, 동시에 예측 가능한 오류도 반복됩니다.

    탈러는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며 행동 경제학의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경제학과 심리학이 사일로(Silo) 형태로 분리된 채 운영되던 시대에 그 둘을 연결한 공로였습니다. 사일로란 조직 내 부서들이 외부와 소통 없이 담을 쌓고 독립적으로만 움직이는 구조를 가리킵니다.

    손실 회피, 잃는 것이 얻는 것보다 두 배 더 아픈 이유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수익이 별로인 주식을 팔고 전망 좋은 주식으로 옮겨타는 게 합리적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막상 매도 버튼 앞에서 손이 멈추는 경험. 제 경험상 이건 의지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심리 반응입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이익에서 얻는 만족감보다 손실에서 느끼는 고통을 약 2배 더 크게 체감합니다. 이를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고 합니다. 손실 회피란 같은 금액이라도 잃을 때의 불쾌감이 얻을 때의 기쁨보다 훨씬 강하게 작용하는 심리적 편향을 뜻합니다. 탈러는 이와 연결해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라는 개념도 제시했는데, 소유 효과란 이미 내 손에 있는 것을 아직 갖지 못한 것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현상입니다.

    탈러가 식전 캐슈너트 그릇을 치운 일화도 같은 맥락입니다. 후배 경제학자들을 초대한 저녁 자리에서 손님들이 캐슈너트를 순식간에 비워냈고, 그러자 탈러가 그릇을 치웠습니다. 손님들은 오히려 좋아했습니다. 정통 경제학 논리라면 선택지가 줄어드는 상황을 반겨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것을 끝까지 먹지 않으려면 의지력이 필요하고, 그 의지력이 고갈되기 전에 선택지 자체를 없애는 쪽을 더 편하게 여겼습니다.

    이런 인간의 비합리적 가치 판단 패턴은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같은 10달러를 절약하더라도, 저가 제품에서는 운전을 더 해서라도 아끼려 하지만 고가 제품에서는 10달러 차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 수익이 미미한 자산을 처분하지 못하고 보유를 지속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3. 미래의 이익보다 현재의 만족을 훨씬 크게 평가해 장기 저축이나 연금 준비를 미루는 경향이 강합니다.

    심리 계좌와 매몰 비용, 우리가 모르는 사이 빠지는 함정

    저는 얼마 전 새로 생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영수증을 받았을 때 이런 안내를 봤습니다. 리뷰를 남기면 3,500원짜리 구슬 아이스크림을 드린다는 것이었습니다. 4인 가족이라 어린아이도 있었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음식을 다 먹기도 전에 이미 마음속으로 별 다섯 개를 찍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먹고 나니 그다지 배도 부르지 않고 왠지 바가지를 쓴 기분이 들었습니다. 결국 아이스크림도 받지 않고 나왔고, 나중에 그 식당 이야기를 꺼낸 지인에게도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

    이게 바로 탈러가 말한 거래 효용(Transaction Utility) 심리입니다. 거래 효용이란 물건의 실제 가치와 무관하게, 얼마나 유리한 거래를 했느냐는 느낌 자체에서 오는 만족감을 뜻합니다. 3,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이 제게는 별점을 올리게 만드는 충분한 유인이 됐고, 음식의 실제 질은 그 판단에서 잠깐 밀려났습니다.

    심리 계좌(Mental Accounting)는 더 근본적인 함정입니다. 심리 계좌란 사람들이 돈을 임대료, 저축, 식비 등 별도의 심리적 통장으로 나눠 관리하며 돈의 실제 대체 가능성을 무시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신용카드 대금이 밀려 있을 때는 예금을 빼서 갚는 것이 수학적으로 유리한데, 많은 사람들은 저축 통장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심리적 저항을 보입니다.

    매몰 비용(Sunk Cost) 오류도 여기서 빠질 수 없습니다. 매몰 비용이란 이미 지출되어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을 뜻합니다. 테니스 클럽 연회비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팔꿈치가 아픈데도 3개월을 더 버티는 행동, 성과가 없는데 이미 투자한 돈이 아까워 계속 버티는 행동,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이어간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도 바로 이 매몰 비용 오류입니다. 아마존 프라임 연회비 99달러를 낸 사람이 더 자주 아마존을 이용하게 되는 것도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NBER 행동경제학 관련 연구)

    넛지, 강요 없이 더 나은 선택을 유도하는 방법

    그렇다면 이런 비합리성을 알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탈러가 제안하는 방향은 넛지(Nudge)입니다. 넛지란 강제나 금지 없이 선택 구조를 설계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더 나은 방향을 택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팔꿈치로 슬쩍 건드리는 것처럼 부드럽게 개입한다는 의미에서 이 이름이 붙었습니다.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2010년 행동 분석팀, 이른바 넛지 부서를 신설했습니다. 이 팀이 처음 한 일은 세금 체납자들에게 단 한두 줄짜리 문자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다른 국민 대다수는 이미 세금을 납부했으며, 당신은 극소수 미납자에 해당합니다." 그 결과 일정 기간 내 세금 납부 건수가 5% 늘었고 금액으로는 900만 파운드에 달했습니다. 법이 바뀐 것도, 강제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출처: 영국 행동 분석팀(Behavioural Insights Team))

    연금 자동 적립 제도도 같은 원리입니다. 신입 사원이 입사할 때 연금 적립을 가장 유리한 옵션으로 기본 설정해두면, 굳이 변경하지 않는 관성 때문에 대다수가 그대로 유지합니다. 탈러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근시안적이며 수십 년 후보다 지금 당장의 만족을 더 중요시합니다. 이런 성향을 억지로 교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성향을 알고서 좋은 쪽으로 활용하자는 것이 넛지의 핵심입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도 이것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거주 공간에서도 주변을 보면 미래를 불투명하게 여기며 준비하지 않으려는 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잘 먹고 잘 누리며 사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믿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그런데 탈러의 연구는 그게 단순히 그 사람의 의지 문제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현재 편향(Present Bias) 때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현재 편향이란 먼 미래의 이익보다 지금 당장의 만족에 훨씬 더 큰 가중치를 두는 심리적 경향을 뜻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고령층이 젊을 때 아무리 잘 살았더라도 노후 준비가 부족해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도 이 현재 편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행동 경제학과 기존 경제학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A. 기존 경제학은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이고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호모 이코노미쿠스 모형을 전제로 합니다. 반면 행동 경제학은 실제 인간이 감정, 편향, 의지력 부족 등으로 인해 반복적으로 비합리적 선택을 한다고 봅니다. 탈러는 이런 인간의 실제 행동 패턴을 경제학 모형 안으로 가져온 것이 핵심 기여입니다.

    Q. 손실 회피 심리가 투자 판단에 미치는 영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나요?

    A. 손실 회피 심리는 이익보다 손실에 2배 정도 강하게 반응하는 경향 때문에, 수익이 나지 않는 주식을 처분하지 못하고 오래 보유하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반대로 수익이 난 주식은 조금이라도 손실로 전환될까 봐 조기에 매도해버리는 경향도 함께 나타납니다. 두 경우 모두 합리적 판단보다 감정이 앞선 결과입니다.

    Q. 넛지는 결국 사람을 조종하는 것 아닌가요?

    A. 저도 처음에는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탈러는 이 비판을 인식하고 자신의 입장을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개인의 선택권을 완전히 보장하면서도 더 나은 선택을 기본값으로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금지하거나 벌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선택 구조를 설계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Q. 매몰 비용 오류를 일상에서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핵심은 지금 이 결정을 과거의 지출 없이 처음부터 내린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스스로에게 묻는 것입니다. 이미 낸 회원비, 이미 산 티켓, 이미 투자한 금액은 앞으로의 선택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됩니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탈러 본인도 인정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니까요.

    Q. 심리 계좌 때문에 실제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나요?

    A. 대표적인 사례가 고금리 대출이 있는 상황에서도 저금리 예금을 해지하지 않으려는 행동입니다. 예금 금리보다 대출 금리가 훨씬 높기 때문에 예금을 빼서 빚을 먼저 갚는 것이 수학적으로 유리합니다. 그런데 저축 통장과 대출 통장을 별개의 심리 계좌로 분리해 생각하기 때문에 이 간단한 계산이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탈러 본인은 언젠가 모든 경제학자들이 인간의 행동 패턴을 연구에 통합하는 날이 오면 행동 경제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꽤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가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행동 경제학이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탈러의 책을 하루 10페이지씩, 저처럼 천천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독서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dABY2x1yiY